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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3945
2013.05.05 (19:21:12)
수상부문:  사랑상 
이름:  권영기 

  벌써 돌아가신지 28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며 그때가 74세로 혈기가 왕성하고 특별히 아프신 데가 없이 건강하셨습니다.

결혼한 조카가 오랫동안 신부전증으로 고생하고 있어 비오는 날 손수 승용차를 운전하여 용하다는 시골 한의사를 찾아 진맥 처방을 받아 귀가중에 빗길에 화물 트럭과 정면 충돌하여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실 때도 친족을 위해 명을 바친 울 아부지의 정신과 魂이 저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집니다.

울 아부지는 일제 식민지시대이며 태평양 전쟁이 막 시작되기 전인 1938년에 일본에서 동해안쪽에 있는 후꾸이(福井)라는 조그만 공장도시에 밀항하다시피 건너가서 당장 먹을 게 없으니 마부노릇을 하여 끼니를 이어다고 하였습니다.

말과 수레의 주인은 따로 있고 속칭 마수레 운전수를 하며 푼돈을 모았다고 합니다.

방 한칸을 빌릴 돈이 모이자 2살 5살 된 두 아들과 아내를 조선에서 데려와 갖은 고생을 겪는 동안 내일을 기약 할 새도 없이 영양실조와 병으로 아내가 죽고 2년후 저의 어머니가 재취로 시집가서 저를 포함한 4형제를 얻었습니다.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울 아부지는 조선 벽촌에서 끼니를 이어가지 못하게 되자 개명된 일본을 동경하고 밀항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일자무식에 일본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러한 용기, 그러한 정신이 어디서 나오신 것인지 저는 지금도 상상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정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수레 운전수를 할 당시 울 엄마도 어린 자식들에게 방안에서 나가지 않도록 철저히 당부를 하고는 방적공장에 나가 생계를 꾸려 나갔습니다. 그 와중에 젖이 퉁퉁 불어 유선종에 걸려 수술할 돈이 없어 제대로 마취도 하지 못하고 칼로 종기를 오려내었다고 하니 아픔이 얼마나 컸는지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울 아부지는 마수레 운전수에서 그사이 벌어온 돈으로 마수레를 구입해서 방적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을 받아 싣고 열심히 밤 10시가 넘도록 운반해서 죽기 살기로 돈을 벌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마 이렇게 명을 걸고 돈을 모으는 정신은 지독한 가난을 경험했고 더 살아 보겠다는 의지가 남달랐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초근목피로도 끼니를 다 떼우지 못하고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굶어 죽는 산간 벽촌의 처참한 광경을 보고는 나는 잘 살아보겠다는 불굴의 정신이라 생각합니다.

마수레로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에 갖은 고생을 다 참고 견디어 오든 참에 태평양 전쟁은 끝나고 일본이 항복하여 일본거주 조선인들이 일시에 귀국하게 되니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고 하였습니다. 일본에 있는 재산이나 금전은 단 한푼도 갖고 가지 못하고 몸만 귀국하라 하니 이런 날 벼락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한정된 귀국선에 추운 부둣가에서 사흘을 기다려 관부연락선을 탔는데 추위와 배고픔은 말 할 것도 없고 아우성과 고생을 이루 다 말 할 수가 없었다니 저희 자식들은 그때 당시 갓 태어난 애기라 무얼 알겠습니까?

울 아부지는 두고 온 돈, 엄청난 민족차별과 고생으로 모은 돈을 두고 온 것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35세 이었습니다.

땅에 파묻어 놓은 돈을 가져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밀항하여 그 돈으로 직물로 바꾸어 일본에서 다시 밀항하여 귀국하였다 하였습니다. 작은 목선에 직물을 싣고 현해탄의 거센 파도와 감시망을 뚫고 밀항하여 귀국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약관 35세에 어디서 그런 용기와 불굴의 魂이 있었는지 상상이 잘 가지 않습니다.

정주영씨의 서산방조제 유조선 물막이 공법을 생각해 볼 때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신 분이 어디서 이와 같은 혜안의 지혜가 나오는지 존경해 마지않습니다만 울 아부지도 어디서 목숨과 막 바꾸겠다는 용기와 신념이 생겨 나왔는지 존경하고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일본서 몰래 가져온 직물로 조선돈으로 바꾸어 목탄차를 구입해 산판일을 하여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목탄차는 나무를 태워가는 트럭이고 산판은 해방 후 연료는 부족하고 판자집이나 상자를 만들려면 목재가 많이 필요하여 벌목 작업시 크고 작은 모든 나무를 잘라내어 목재상에 싣고 나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습니다.

울 아부지는 목탄차를 사서 산판을 했습니다. 마수레로 운반을 해 봤고 사람 힘으로는 운반하기 힘듦을 아셨기에 정주영씨와 같은 혜안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6.25전쟁 즉 한국전쟁 후에는 미군이 버리고 간 묵직한 미군트럭으로 바꾸시드니 그다음엔 버스사업으로 큰돈을 벌어 산간 벽촌 일가친척들 수십명을 불러 운전수, 조수. 정비사로 키워 주셨습니다. 일자무식에서 개화된 문명을 조금도 접해 보시지 않으신 울 아부지가 어떻게 상상을 초월한 용기와 배짱, 불굴의 도전정신을 몸에 가지고 계셨는지 자식된 저는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면면히 물려주신 울어부지의 魂을 자주 느끼며 제2의 인생에는 나이를 비껴 새로운 도전정신으로 살아 가 보고 싶소. 아부지를 조금이나마 닮아 가 보려고 합니다.

물고기를 주는 아버지가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아르켜 주는 아버지,

좋은 본보기를 물려주는 아버지, KACE에서 배운 대화법을 많은 학부모나 청소년에게 물려주는 아버지가 되어 우리사회에 기여하는 울 아부지의 魂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아버지 정말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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