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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3821
2013.05.05 (19:20:20)
수상부문:  사랑상 
이름:  김종만 

  아버지! 저는 당신과 함께 했던 삶 가운데 즐거운 추억 한 가지가 있습니다. 당신과 함께 우리 집 앞산 에서 나무를 했던 기억입니다. 아주 어릴 때는 멋도 모르고 아버지 지게 뒤를 졸졸 따라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어쩔 땐 걷다가 힘들면 지게에 태워달라고 투정까지 부리면서 말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 작은 체구로 긴 말 하지 않고 막내아들을 지게에 태워주셨습니다. 그때는 아버지의 몸이 왜 그렇게 커 보였는지 ‘골리앗’ 만큼 돼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종만아, 재미있어?”라고 말이죠. 근데 저는 아버지가 힘드신 건 아랑 곳 하지 않고 “어, 재미있어 아빠, 좀 무섭기도 하고”라고 어리광을 피웠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머리 좀 컸다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아버지를 따라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힘없이 지게를 지고서는 쓸쓸하게 홀로 산 위를 오르셨습니다. 저는 축 처진 아버지의 뒤 모습을 보고 마음은 아팠지만 이내 친구들과 놀 생각에 당신의 외로움을 잊어 버렸습니다.

언젠가 하루는 아버지가 당신의 키에 몇 척이나 더 되는 나무를 지게에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곤 “어이 차” 한 번의 기합 소리와 함께 단번에 일어나셨습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지게 위에 있는 나무 짐들이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아버지를 그냥 내버려 둘리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몸이 앞으로 확 넘어 질 뻔 했습니다. 그 찰나에 제가 얼른 아버지의 지게를 뒤에서 힘껏 잡아 당겼습니다. 하마터면 아버지가 그놈들 에게 깔릴 뻔 하셨습니다. 제가 잽싸게 뒤에서 끌어당겼으니 망정이지. 휴~. 저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 밉기도 하고 미련해 보였습니다.

혼자 생각에 ‘아버지는 왜 미련하게 한 번에 나무를 그렇게 많이 하실까? 한 번에 많이 하더라도 조금씩 나누어서 가져가시면 될 걸. 왜 이기지도 못하는 나무를 한꺼번에 들려고’ 그땐 도대체 아버지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당신이 그때 왜 그러셨는지… 답답한 제가 그런 아버지를 보고 묻지 않을 리 없었습니다. 좀 짜증어린 투로 말했습니다.

“아빠는 왜 그렇게 한꺼번에 나무를 많이 가져가려고 그래?” 그때 아버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네가 같이 오려고 안잖아?”

그랬습니다. 문제는 ‘저’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비록 바람 불면 훅 날아갈 것 같은 연약한 몸이었지만 아버지에겐 꼭 필요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제가 나무를 하면 얼마나 하고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됐겠습니까? 오히려 방해가 안 되면 다행이었겠지요.

하지만 저는 당신에게 화려하진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될 조연이었습니다. 나무 하는 일에 실질적 도움은 못 줘도 함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는 그런 엑스트라 말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제가 산에 같이 가지 않을 때, 적막한 산중에 친구 없이 혼자라는 쓸쓸함 때문에 그렇게 힘없이 산을 오르셨던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당신이 몇 척이나 되는 큰 나무를 톱으로 켰습니다. 하지만 이내 지쳐 덥석 주저 않고 말았습니다. 그때 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톱을 손에 쥐고는, ‘아버지를 힘들게 한 나무야 빨리 쓰러져라’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조자룡 헌 칼 쓰듯’ 나무를 켜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톱과 나무는 나를 비웃기나 하듯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먼발치에서 그 광경을 보고 계신 아버지가 옆에서 크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고 이놈아, ‘나무가 형님, 나 살려 주세요’ 라고 하겠다. 저리 비켜라.”

그리곤 손에 침을 ‘뛔 뛔’ 몇 번 튀기고는 톱을 켜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함께 하는 것, 그리고 아들의 웃음. 이것만으로도 저는 아버지에게 든든한 후원자였던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같이 나무 하러 가자고 할 때 마다 싫은 기색을 한두 번 낸 게 아니었습니다. 후회가 됩니다. 지금처럼 제가 당신에게 꼭 없어서는 안 될 조력자였다는 깨달았다면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이제 와서 후회 해 본들 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아버지와 함께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앞으로 넘어지시지 않게 송사리와 같은 작은 힘을 보태 끌어당겼습니다. 아버지는 작은 돌 하나라도 잘못 밟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계셨습니다. 혹여 돌 하나라도 잘못 밟으셔서 넘어지는 날에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런 일은 상상 하기도 싫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중간 정도는 무사히 잘 내려오셨습니다. 아마도 제 기억에 아버지가 나무하러 가서 크게 다치신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발을 헛디뎌 발목을 접질리거나 나뭇가지에 얼굴을 글키거나 하는 일을 제외하곤 말입니다. 제 기억이 맞나요, 아버지?

문제는 이제 부터였습니다. 아버지는 아슬 아슬 줄타기 하듯 지게 짐을 메고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내려오면 오실수록 당신의 다리가 한정 없이 떨렸습니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말입니다. 하긴 그 작은 체구에 그 무거운 나무를 등에 업었으니 다리가 떨리지 않을 리 만무했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딱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떻게 해 드릴 수 가 없었습니다. 그저 쓰러지시지 않게 뒤에서 당기는 것 외에는 말입니다.

아버지! 힘드셨죠? 그때 아버지가 등에 지신 것은 나무가 아니라 삶의 무게였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함께 동행 할 인생의 동지가 필요했던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철없이 아버지를 홀로 보냈으니, 이 우매한 사람을 용서 하십시오. 아버지! 당신과 함께 했던 지난날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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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는 마른 체형은 아니었지만 키가 155㎝도 안 될 정도로 작았다. 그런 작은 몸으로 큰 지게를 지고 나를 태우고 산을 올랐으니 여간 힘들지 않으셨을 것이다. 유전 탓인지 나도 키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나는 이때까지 키가 작다고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열등감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운동신경이 좋아서 스포츠 경기에서나 모든 놀이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월등하게 잘했기 때문이다. 그런 부모님께 오히려 감사하면서 살았고 지금도 그 마음은 한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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