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도구화가 아닌 '함께하는 행복' 지향해야
김혜준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46·사진)은 “그동안 아버지 담론이나 운동이 여성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여성의 권리신장을 위한 도구로써 다뤄져 온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또 “과거 가부장적 아버지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자 하는 데 집착하다보니 정작 아빠 스스로의 정체성은 정립되지 않는 혼선이 있다”고 지적했다.
- 지금까지 아버지 담론이나 운동이 여성적 관점에서 진행돼 왔다고 했다.
“여성가족부만 해도 여성이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남편의 육아 분담이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다보니 남성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다. 여성가족부가 가족정책을 위해 마련한 아버지 역할 토론회를 가봐도, 아빠들을 교육하는 현장에서도 발표자나 강사는 여성이 대다수다. 그럴 경우 남성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이제는 아버지 담론이 남성들을 도구로써 가족 내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의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 그렇다면 바람직한 아버지 담론은 어떤 것인가.
“한국에서 왜 아버지라는 화두가 필요한가부터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아버지 담론은 아버지의 행복은 빠진 채로 논의돼 왔다. 그들의 내적 갈등, 꿈 등은 도외시돼 왔다. 아버지 자신과 가족 전체, 그리고 사회의 안녕을 위한 아버지 담론이 돼야 한다.”
-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선행조건이 뭘까.
“우선 아버지의 생각이 중요하다. 나의 어떤 부분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해야 한다. 지금 좋은 아빠 신드롬이 사회적으로 팽배하면서 저마다 처한 조건과 성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스칸디대디니, 프렌디니 하는 각종 해법만 난무하고 있다. 이를 좇다보면 그들에게 육아는 또 하나의 힘든 노동이나 스트레스가 될 뿐이다. 아버지들 스스로 아빠의 육아가 필요하다는 자각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두번째는 엄마의 협조가 필요하다. 아버지의 존재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고 아버지 공간을 내어줘야 한다. 자기의 틀 안에서 필요할 때만 남편을 가져다 쓰는 방식이어선 안된다. 아버지 교육은 엄마에게도 필요하다. 세번째는 아버지가 실제로 아이와 교감하는 시간을 많이 확보하고, 네번째는 아버지 스스로 일과 가정생활을 균형있게 배분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
- 마음은 굴뚝같아도 회사에 묶인 시간이 많은 만큼 실천이 어렵지 않을까.
“아버지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은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장기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당장은 아버지 교육에 힘써야 한다. 그러나 정작 변화가 필요한 아버지들은 관심이 없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아버지라면 거의 다 참여하는 예비군훈련과 민방위훈련에서 아버지 노릇에 대해 서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 아이, 아내, 본인, 그리고 사회를 위해서도 아버지 노릇을 잘하는 아버지를 만드는 것만큼 좋은 복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