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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2781
2013.05.05 (18:41:57)
수상부문:  행복상 
이름:  최인숙 

파란바탕에 ‘삼천리 자전거’라는 은색글씨가 새겨진 투박하고 묵덕해 보이는 자전거!

뒷자리에는 널따란 나무판자가 깔려있고 물건을 감기위해 꽤 굵직한 밧줄이 감겨져 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70~80년대 아버지가 타던 자전거다.

아버지는 집에서도 호랑이지만 밖에서도 제일가는 호랑이였기에 아버지의 물건에 손을 댄다는 것은 목숨을 내 놓는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섭게 느껴졌고 엄하기로 으뜸이셨다. 아버지 앞에서 뿐 아니라 어른과 식사 할 때는 반드시 무릎을 꿇은 자세로 먹어야 했고, 음식에도 위아래 서열을 지키도록 했으며, 음식 씹는 소리를 내어서도, 반찬을 뒤적거려서도 안 되었다.

아버지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요구는 어머니의 행실에도 여지없이 계속되었다.

예와 법도를 가르치는 것은 아버지를 따를 이가 없을 정도 였기에 덕분에 어린나이에도 예와 법도가 몸에 베어, 어딜 가나 우리남매들 칭찬은 마를 날이 없었다.

그러나 공자 왈, 맹자 왈 하시던 도덕적인 아버지도, 당신의 감정이 조금이라도 뒤틀린 날에는 밥상이 마당으로 던져 지는 건 예삿일이었고,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 모두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마당에 무릎을 꿇고는 한참이나 있어야 했다. 사자가 표효 하는듯 한 크고 무서운 호통과 길고 긴 푸념을 지칠 만큼 한 뒤에는 방에 들어가 주무셨는데, 그제서야 무릎 꿇린 저린 발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당시 우리집은 세간이 넉넉한 편이었나보다.

사법고시1차에 수석으로 합격 해 놓고도 사정이 생겨 공부를 계속할 수 없게 되자 건축업을 하셨단다. 덕분에 도시 부잣집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들을 갖춰 놓고 사는 호강을 누리기도 하며 살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우리 것이 아닌 ‘아버지 것’이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전화가 있었고, 미숫가루 탄물을 시원하게 하려는 아주머니들을 대문 앞에 줄을 서게 만드는 냉장고도 있었으며, 벽돌만한 핸드폰, 오토바이, 트럭, 승용차도 있었다.

동네사람들 눈에는 이런 우리집은 범접할 수 없는 이방인같은 이웃이었지만, 자식인 우리들도 아버지의 물건은 신기하면서도 두려운 대상의 물건이었기에 단 한번, 만져 본적도, 타 본적도, 가까이 가 본적도 없었다.

한번쯤은 기회가 오겠지......, 싶은 아내와 자식들의 기대나 호기심은 아버지의 냉정과 함께 세월과 묻혀 졌고, 그러한 아버지의 무심함으로 인해

아버지를 우리와는 다른 ‘한 지붕 속에 남의 식구’처럼 여겨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늦봄 즈음 일이다.

그토록 무서운 내 아버지의 ‘삼천리 자전거’를 어쩌다... 내가 어쩌다...

빼앗길뻔 한 사건이 벌어졌다.

사촌언니가 어느 집 모퉁이로 데려가더니 담장너머에 아기사과가 열려있는 걸 보여주었다. 나중에 알았다. 꽃 사과 나무였다는 걸.

그 마을에 꽤 오래 살면서도 난 처음 봤다.

사과랑 똑같은게 아직 너무 어려서 먹을 맘은 없었지만, 빨갛게 익은 큰 사과만 봤던 나는 꽃 사과의 작고 앙증맞은 모습에 반해 버렸고, 굉장히 신기했다.

그 기분은 지금도 그대로다.

사촌언니는 그걸 따주고 싶었는가 보다.

높은 담장을 보다가, 갑자기 아버지 자전거를 가지고 오라는 거였다.

정황상 어떤 계획인지 알아챘지만 잘못하면 목숨이 달아날 것 만 같은 무서운 요구라 잠시 머뭇거리다, 꽃 사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아버지의 자전거는 담장 앞에 옮겨졌다.

십여 분 안에 집에 가져다 놓으면 될 거란 생각을 하며......,

나는 자전거를 붇잡고, 사촌언니는 뒷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키 작은 꼬맹이에겐 무리였는지 꽃 사과는 사촌언니의 손가락 마디 하나 차이로 우릴 애태웠다.

그때 호통을 치며 나오는 주인아저씨를 보자,

사촌언니는 달음질 쳐 도망을 갔지만, 난 나보다 몇 배나 큰 아버지의 자전거를 끌고 가느라 빨리 도망갈 수가 없었다.

인근에 대문이 열려 있는 집으로 얼른 들어가 자전거는 대문옆에 세워두고 창고 쪽으로 숨었지만 들키고 말았다. 사실 아저씨는 여유있게 뒤 따라 오면서, 자전거를 지키려는 꼬맹이의 턱없는 질주를 모두 지켜 봤던거다.

헛기침을 하는 아저씨를 따라 아버지 자전거와 나는 담장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가면서 닭똥같은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아저씨는 “이놈아! 익지도 않은 사과를 누가 먼저 따자고 했냐?”라고 물으셨다.

나이가 어린데도 의리가 있었나 보다.

어차피 나만 걸린 거 사촌언니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제가 따달라고 했어요! 죄송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엉엉~울면서 사정이란 사정을 다했던 것 같다.

그러자 아저씨는 “자전거를 찾아 가려면 사과 값을 가져오든지 아버지를 모시고 오거라” 그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앞이 캄캄했다.

꽃 사과는 따지도 못했는데...호랑이 보다 무서운 아버지의 자전거만 잃게 되고, 예의 바르다고 소문난 집 자식이 서리를 해서 아버지 얼굴에 먹칠까지 하게 됐으니,‘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실 저녁이 되자 죽음의 공포는 더욱 엄습해 오고 심장은 방망이질을 계속 해대어,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엄마에게 알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괜히 엄마가 아버지에게 말을 꺼내다

불똥이 엄마에게 튈까봐 침묵을 결심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저녁무렵 돌아오신 아버지는 빼앗긴 자전거를 끌고 오셨고, 영문을 몰라하고 있는 내게 살짝 웃으시며, “역시 내 딸이다”

이 한 말씀만 하시더니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저씨는 우리 계획을 담장 너머에서 다 엿듣고 계셨단다.

내가 아버지 자전거에 손을 대면 안 되고, 꽃 사과도 따지 말자고 말렸으면서도 사촌언니를 지켜주는 의리를 보이더라.며 칭찬을 했더란다.

과정과 결과가 어찌 되었든 서리를 하려 했던건 분명한데도 너그럽게 넘어가주시며 웃어 주셨던 아버지 덕분에 더 착하고 정의로운 딸이 되려고 노력했고, 지금 이렇게 반듯하게 잘 자라 두아이 엄마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한번도 자식에게 매로 채벌한 적은 없으셨다.

사실 아버지는 집에서는 근엄하고 위엄있게 왕노릇을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잘 통하는 사람과 얘기할 때면 영낙없는 소년같다.

단지 가족에게 보여지는 아버지의 무심함과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권위를 넘어 독재자같은 권력적인 모습 때문에 ‘어린 적개심’을 키웠던 거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깊은 속사랑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살갗에 와 닿는 자상한 사랑의 표현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와는 그런 심리적 교류가 없었기에 아버지가 주는 사랑은 자식들이 헤아리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속사랑으로 매장되어 우린 몰랐나보다. 아버진 늘 그런식으로 너그러움을 보여주셨고, 뚝뚝한 듯 얕은 미소와 멋쩍은 헛기침에 당신의 사랑을 담아서 표현했을 텐데.....

무심해 보이기만 하는 아버지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엄마와 똑같았던 거였다.

그토록 무섭게 느껴졌던 아버지가 몇 년전 암수술을 하시고 암과 싸우시느라 기력이 많이 쇠약해 진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파온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에서, 표현하는 아빠와 딸이 되보지 못한게 한이 될 것만 같다. 이젠 아빠라고 부르려니 오히려 어색한 나이가 되버렸고, 사랑해요!라는 말이 죄인의 독백만큼이나 어렵게 되버렸지만...

아버지! 아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이제는 근엄함을 벗고 가끔은 아이처럼 살갑게 대해 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또한 사랑을 옳게 전달 하기위해 많이 표현하고 있다.

사랑은 손으로, 입으로, 눈으로, 귀로, 발로라고 하듯 유치하게 여겨질지 몰라도, 지금은 평범하게 늙어버린 내 아버지를 많이 안아 드린다.

친정집 대문을 드나들 때 마다 아버지는 나의 두 아들을 꼬옥 안아 주신다.

그동안 못해본 신체적 접촉을 많이 하고, 별 의미없는 이야기지만 즐겁게 나누며, 서로의 눈길을 마주치면서 서로가 먼저 다가가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속사랑을 흠뻑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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