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결과확인
평생교육사 현장실습


부모리더십센터
인문교육원
차세대리더십센터
학교리더십센터
시민리더십센터
학교안전센터
도서관친구
평생교육원
아버지다움연구소


맨위로



글 수 98
조회 수 : 2267
2011.09.15 (14:29:54)
사용자 평가: 
 
(0.0/0)
제작: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 
요약:  내 안의 교육 소중하게 여기기 / 김재웅

1.관점과 교육
(1) 관점의 중요성
(2) 뉴턴의 사과의 관점
(3) 관점과 교육
2. 학교와 교육
(1) 학교는 무엇하는 곳인가?
(2) 교육이 일어나는 곳
3. 위기에 빠진 학교
(1) 교육의 패러다임 변화
(2) 지식정보화 사회
(3) 신자유주의
(4) 포스트모더니즘
4. 교육을 새롭게 보는 관점
(1) 갈매기의 꿈
(2) 동굴의 비유
(3) 김춘수의 꽃
(4) 교육이란 무엇인가?
(5) 삶과 교육 

1. 관점과 교육

 

(1) 관점의 중요성

 

관점은 그 무엇을 그 무엇으로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안경과도 같다. 파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파랗게 보이고 빨간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빨갛게 보인다. 그러나 관점이라는 것을 갖게 되면 어떤 사물과 현상을 잘 볼 수 있어서 좋기는 하나,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배제한다. , 관점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동시에 그 관점에 우리를 구속한다. 이것을 관점의 파라독스(paradox)라고 한다. 한 가족 안의 부부싸움에서부터 정당간의 정치 싸움과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갈등과 싸움은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바로 내가 보는 관점은 옳고 네가 보는 관점은 틀렸다는 것이다.

관점의 중요성은 종종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된다: “세상은 있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대로 있다.” 우리는, 세계가, 즉 사물과 현상이 저기 바깥에 한 치의 의심을 할여지 없이 확실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내가 보는 방식으로 똑같이 보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산다. 그러나 세계는 내가 그렇게 보아 줄 때 비로소 태어나는 것이다. 관점은 세계를 낳는 어머니이다.

예컨대, 빛의 본질은 무엇인가? 파장(wave)인가 입자(particle)인가? 과학자들 사이에 파장설과 입자설이 팽팽히 맞서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결론이 나기는 빛의 성분인 광자(photon)는 관찰자가 보고 싶은 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 광자를 입자로 보고 싶으면 입자 측정기를 사용하면 되고, 파장으로 보고 싶으면 파장 측정기를 사용하면 된다. 광자는 내가 보기 전에는 입자이면서 파장이지만, 내가 보는 즉시 입자로 변하기도 하고 파장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도 관점의 중요성에 대하여 잘 말해 주고 있다. 여러분은 경주 석굴암을 몇 번이나 가 보았는가? 가서 무엇을 보았는가? 돌덩어리 석가모니를 보고 , 크다!” 아니면, “, 멋있다!” 하고 탄성을 질렀는가? 아니면, “이렇게 오래 된 작품이 어떻게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을까?” 의아해 하였는가? 아니면, 가 보았다는 증거 남기기 위해 사진 한 장 찍고 돌아 왔는가? (요즈음은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지만) 유홍준 교수는 국내의 수많은 문화 유적지 중에서 가장 많이 가 본 곳이 경주이고, 그 중에서도 석굴암이란다. 많이 가 보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가 볼 때마다 석굴암 앞에서 전율을 느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는 석굴암의 예술적 측면, 과학적 측면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속으로 놀라며, 그것을 만든 사람의 노고와 당시 조상의 숨결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듯, 석굴암의 총체적인 모습을 온몸으로 느끼려면 적어도 30분 이상 관찰해야 하리라. 우리가 1-2분 정도만 둘러보아도 더 볼 것이 없어 발길을 뜨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가 된다. (흥미 있는 것은, 우리가 억지로 30분 동안, 아니 1시간 이상 그 앞에 붙잡혀 서 있다고 해서 석굴암의 아름다움이, 그 과학성이, 조각가의 정교한 손길이 저절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유홍준 교수는 석굴암을 볼 줄 아는 관점 또는 안목이 있고 (또는 뛰어나고), 우리에게는 그러한 관점이나 안목이 없거나 조잡한 수준에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유홍준 교수와 우리에게 석굴암은 이미 똑같은 석굴암이 아니다. 유홍준 교수는 석굴암에게서 느끼는 똑같은 전율을 불국사 안에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에게서도 느낀다고 쓰고 있다. 이들을 한낱 사진 찍는 배경으로만 여기고 있는 우리에게는 왜 유 교수가 느끼는 감동과 전율이 없을까? 역시 관점의 문제이다. 그는 하찮게 보이는 돌덩어리에 의미를 부여하고 생명력을 부여할 줄 아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주변에 널려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그것을 볼 줄 아는 눈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볼 줄 아는 눈이 없다는 것은 곧 눈 뜬 장님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러한 예는 석굴암, 다보탑, 석굴암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르느와르의 그림 한 폭 앞에서 한참동안 발을 멈추고 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감동을 받는 반면에, 어떤 이는 별 감동 없이 그냥 지나치는 것이다. ,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황제를 들으면서 가슴 벅차 오르는 감동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느낌도 없는 사람도 있다. 라디오에서 국악이 흘러나오면 채널을 반사적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국악에 심취하여 삶의 의미를 거기에 두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볼 수 있는 눈”, “들을 수 있는 귀는 지금까지 강조하여 온 관점에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가 관점을 갖지 못하면, 더 나아가 성숙시켜 나가지 않으면, 아무리 멋있는 문화 유적도, 미술 작품도, 음악도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 아니 우리에게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보아 줄 때 그러한 세계는 비로소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점을 갖는 것은 예술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학문 중심 교과가 나름대로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대한 모종의 관점을 다루고 있다. 보다 확대하면,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관점은 삶의 모든 체험 속에 붙박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삶은 관점 수정의 역사라고 해도 그렇게 틀린 말이 아니다.

Tag List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