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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3507
2013.05.05 (19:10:25)
수상부문:  행복상 
이름:  권경희 

  나에게는 시아버님이 계신다.

11년전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6년전부터 우리 집에서 함께 거하시게 되었다.

남들은 시아버지를 모신다며 나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지만 나는 오히려 내가 시아버님께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내게 시아버지는 친정엄마와 같으신 분이시다.

시아버님은 올 해로 86세가 되셨다.

시아버님과 내가 함께 살게 된데는 특별한 동기가 있었다.


지금부터 6년전 딸아이가 5학년일 때의 일이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로 6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6학년 담임을 맡게 되면 특별한 노력을 더하여야 한다. 학생들의 생활지도와 학교 업무로 나는 늘 녹초가 되어버렸고 자연히 집에 와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피곤한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기때부터 아토피 피부염이 있었던 딸아이는 5학년이 되자 그 증상이 심해지게 되었다. 팔, 다리에 진물이 흐르고 긁어서 생긴 상처로 피범벅이 되기 일쑤였으며 밤새 가려워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나는 바쁜 학교생활 중에 특별히 해줄 수 있는게 없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딸아이도 나도 몸과 마음이 다 지쳐가고 있었다.

여름방학이 되자 나는 친정언니에게서 소개받은 한 한의원에 가게 되었다.

딸아이의 상태를 본 의사는 나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딸아이가 이 지경이 된 것은 100%엄마 책임입니다. 지금 당장 학교를 휴직하든지, 시골로 내려가든지해서 3년 동안 치료를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사회생활하기도 어려워질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한약을 처방해 줄 수도 없고 필요하다면 숯가루라도 먹여보십시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100% 엄마책임이라는 말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의사의 말이 서운하기도 했지만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환경질환인 아토피피부염을 치료하기 위해 엄마로서 해 준게 없었던 것이다.

내 몸이 너무 피곤해서 너무 지쳐있어서 음식과 청소, 빨래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그저 병원 약에만 의존했던 것이다.

그 날 이후 나는 심한 자책에 시달리며 딸아이와 함께 자기 시작했다.

자다가 딸아이가 조금이라도 부스럭거리면 긁지 못하게 손을 잡아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자책하는 마음과 딸아이의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불면의 밤은 계속되었고, 특별한 치료방법도 보이지 않았으며, 그러다가 나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

엄마의 부족함으로 예쁘고 야무지고 꿈 많은 우리 딸이 상처투성이의 얼굴과 몸으로 자신의 운명을 슬퍼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나를 더욱 더 슬프게 만들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을 즈음에 나는 고민 끝에 시아버님께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아버님! 제가 이제 곧 개학인데, 학교일도 해야하고 여송이도 잘 돌봐야하는데 지금 이 체력으로는 도저히 두 가지 일을 못하겠어요. 저희 집에 오셔서 집안일을 도와주시면 안 되시겠어요?"

하며 약해진 마음에 나는 그만 시아버님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 때까지는 아버님께서 큰 아주버님 댁에서 생활하고 계셨었다.

내 이야기에 아버님께서는

"그래, 네가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 나는 내가 와 있으면 네가 불편할까봐 그랬지. 그래, 한 번 해 보자"

하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어깨를 토닥여주셨다.

그 날 이후 시아버님께서는 정말 헌신적으로 나를 도와주셨다.

딸 아이의 이불을 햇볕에 말리고, 집 안 청소를 구석구석 하시며 저녁에는 피곤해 돌아오는 나를 위해 시장을 봐오시며 밥과 된장찌개까지 해놓으셨다.

죄송하고 미안해하는 나에게 얼른 밥 먹고 운동하고 오라며 나를 밖으로 내쫓으셨다.

나는 마음으로는 너무 죄송했지만 얼른 몸과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밥도 많이 먹고 학교 운동장을 걸으며 조금씩 체력을 길러갔고, 잠도 잘 잘 수 있었으며 우울한 마음도 많이 회복되어갔다.

아버님의 사랑과 정성으로 내가 힘을 내자 딸아이의 아토피 피부염도 조금씩 증상이 가라앉게 되었다.

깨끗해진 집안 환경과 자연식으로 식이요법을 하고 다시 좋은 병원을 만나게 되어 가려워서 잠을 자지 못하던 딸아이도 편안히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80이 넘으신 나이에도 불구하시고 아버님으로서의 자존심과 체면을 버리시고 오직 자식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헌신하시는 아버님의 사랑 앞에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얼마나 나약한 엄마란 말인가? 자식의 아픔앞에 그저 울고만 있는 나는 얼마나 한심한 엄마인가? 아버님을 보자. 아버님의 사랑을 본받자. 그래 나는 엄마야,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했잖아, 강해지자, 이겨내자.'

이런 마음은 나를 일으켜세웠고 강하게 단련시켰다.

찬바람이 불면서 딸아이의 울긋불긋했던 피부도 다시 하얗게 매끄러워졌고, 나도 학교 생활을 안정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아버님은 계속 우리집에 거하시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딸아이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손등에만 약간의 아토피 흔적이 있고 이제는 아토피가 우리 딸 아이를 괴롭히지 않고 있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딸아이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할아버지를 대접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할아버지께 조잘거리며 할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있다.

나는 아버님의 도우심으로 학교생활을 열심히하여 올해 '학습연구년 우수교사'로 선정되어 1년 동안 학교에는 나가지 않고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교사로서도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지난 3월에 중학교교장으로 발령을 받아 교장선생님으로 재직을 하고 있다.

이 모든 평안함과 행복이 아버님의 사랑과 헌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남편이 교장 발령이 나던 날, 아버님께서는 너무 기뻐하셨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아버님께서 나에게 흰 봉투를 내밀으셨다.

"애비 양복이나 하나 해줘라."

열어보니 50만원이나 들어있었다.

"아버님이 무슨 돈이 있으셔서 이렇게 큰 돈을 주셔요."

"마음으로는 자동차라도 해주고 싶은데~ 나는 1000원을 쓰더라도 열 번을 생각하고 쓰는데 너무 기뻐서 주는 것이니, 꼭 양복을 사 주도록 해라.”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아버님의 깊은 사랑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나는 아버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아버님께 공책과 볼펜을 선물로 드렸다.

“아버님, 이 공책에다가 생각 나시는대로 아버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을 적어보세요. 제가 잘 정리해서 자서전 써 드릴게요.”

아버님은 의외로 이 선물을 좋아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아버님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하셨다.

아버님은 평양이 고향으로 지금 남한에는 동생 한 분만 살아계신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질곡 많으신 삶을 살아 온 세대가 아닌가. 우리 아버님의 이야기도 쓰자면 족히 소설 한 권의 분량이 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엔 벚나무가 아주 많다.

요즘 활짝 핀 모습이 아주 보기 좋다.

나는 이 꽃이 다 지기전에 우리 아파트 통장아주머니, 반장아주머니, 4층할머니, 경비아저씨를 초대해서 맛있는 점심을 대접할 것이다.

우리 아버님을 기쁘게 하기위해서이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사이좋게 지낸다고 칭찬하는 소리가 자자하다.

그리고 동네사람들에게도 우리 아버님은 늘 넉넉한 웃음과 멋진 매너로 인기스타이시다.

이 봄, 아무 근심 걱정없이 환하게 웃으시는 우리 아버님을 뵙고 싶다.

벚꽃처럼 늘 환하게, 바로 우리 아버님 얼굴이 꽃이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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