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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3065
2013.05.05 (18:53:50)
수상부문:  행복상 
이름:  이미정 

 "따르릉 따르릉"

'아침부터 누구야? 아빠일게 분명해 매일 같이 귀찮지도 않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전화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홀로 되신 후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 세번씩 우리집에 전화를 하신다. 당신 자식들보다 손녀딸 목소리가 듣고 싶다며 하루 아니 한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전화를 하신다. 처음에는 혼자되신 아버지께서 적적하셔서 그런가 보다 하며 이해하고 먼저 전화 드리지 못한게 죄송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런 마음도 잠시뿐 너무 자주 하시는 전화가 차차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얄궂게도 아버지의 사랑 방식은 손녀가 귀엽다고 놀려주고 결국 화나게 만들어 버리는 식으로 표현을 해서 어린 딸아이는 할아버지의 전화를 잘 받지 않으려 했다. 그러면 중간에서 내가 맘 상하지 않게 말을 돌리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가 어린이 집에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할 때도 있었다.

가끔씩 무슨 변덕인지 오전 중으로 전화를 안 하시고 점심때 쯤 전화를 하셔서

"너는 애비가 혼자 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걱정도 안 되냐?"

하시며 역정을 내신다.

혼자되신 후로는 상대방의 감정 따위는 상관없이 거친 소리를 내시기도 하신다. 그런 모진 소리를 들었을 땐 나도 하루 종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아니 좀 더 이른 시각이지만 변함없이 아버지일거라는 생각을 하며

"여보세요. 아빠?"

" ....아, 나 죽겠다. 야!"

"아빠! 왜 그러세요?"

“숨도 못 쉬겠고 기운을 차릴수가 없어.”

“그럼 빨리 병원에 가셔야죠. 저한테 전화하시면 어떻게 해요?

119에 전화라도 하셔서 가셔야죠.”

아버지는 혼자계신 당신을 위해 친구분이 데리러 오기로 했다며 그냥 전화를 끊으셨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걸려 오는 전화기에선 아버지가 너무 힘들어 119를 불렀다고 하시며 병원으로 갈거라고 하셨다.

멀리 떨어져 사는 내가 어린 세 아이를 데리고 바로 병원에 가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가슴이 답답했다. 곧장 출근한지 얼마 안된 신랑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께서 아프니 병원에 갈 수 있는지 물었다. 고맙게도 회사에 출근한지 얼마 안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주었다.

그 사이 난 두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고 젖먹이 아이만 데리고 아버지가 계신 병원으로 갔다. 아버지가 계신 병실로 부랴부랴 달려가보니 아버지는 멀쩡히 앉아 계셨다.

“바쁜데 이서방 뭐하러 왔어? 난 괜찮아.”

안도와 허탈감이 몰려왔다.

허약 체질인데다 천식까지 있으신 아버지께서 감기 때문인 것 같다며 괜찮다고 하셨다. 병실에 조금 있으려니 이서방 일 바쁜데 그만 가보라며 돌려보내려 하셨다. 예전에도 감기로 입원한적이 있으셨고 두어 시간 후면 연락받은 친정 오빠도 서울서 온다고 했던터라 별스럽지 않게 발길을 돌렸다.

그 후 오후 6시 무렵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오빠 왔다갔다. 난 괜찮으니 걱정마라.”

“ 네, 아빠 푹 쉬세요.”

난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가 될거라고 상상도 못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아침부터 신경을 쓰고 돌아다녔더니 피곤이 몰려왔다. 막 잠이 들 무렵 서울로 돌아간 오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위독하니 빨리 좀 가보라고……

정신을 차릴 수 없고 마치 꿈결인 것 같았다. 뭔 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멀쩡히 밝은 목소리로 통화를 했는데. 비몽사몽 신랑과 아이들을 깨워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병원 앞에 도착을 하고 불안한 마음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옮겨 아버지가 계신 병실로 갔다. 중환자실에 계셨다. 의식이 없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담당 간호사가 폐혈증 증세로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낮의 아버지의 모습이 선했기에 너무 암담하고 믿을 수 없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그 날 저녁을 무사히 넘기고 의식도 돌아왔지만 결국 입원을 한지 일주일만에 돌아가셨다.

겨울의 문턱에서 미련 없이 낙엽을 떨구는 나무처럼 아버지도 그렇게 나의 곁을 떠나셨다. 너무 급작스런 이별에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고 하기도 싫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도 힘든 시간이었다.

매일 같이 전화를 하셨던 아버지!

전화기만 보면 마음이 아리고 벨 소리라도 들리면 마치 어제처럼 아버지가 전화를 하신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해 볼 때도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수 전화벨이 울릴 때면 한동안은 가슴이 마구 쿵쾅대며 전화 받기가 두려웠다.

누군가가 시간은 약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이별의 아픔도 시간이 흐를수록 무뎌지기 시작했다. 아픔이 무뎌진다고 그리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가슴속 깊은 곳에 고이 간직하고 묻어두는 것이다.

지금은 성가시도록 전화를 해 주시던 아버지는 곁에 없지만 나는 그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립고 아련하다.

오늘 같이 창밖의 벚꽃 잎이 흐드러져 떨어지는 날이면 나는 자꾸만 전화기에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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