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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4214
2013.05.05 (19:25:29)
수상부문:  대상 
이름:  변중희 

장소: 충북 단양 소백산과 유스호스텔


그 준비(1)

작년 캠프에서 돌아오면서 내년에는 어떻게 마당을 펼까? 내 밑바닥부터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몇몇의 장소를 떠 올리고 몇몇의 프로그램을 그적이면서 어떻게, 어디서로 과제를 미리 준비하는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6월. 18㎞의 답사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결제 받는 데는 미숙하고, 보여주고픈 것은 많은 욕심들이 초조하기도 하고 은근한 자부심도 느끼는 양면성으로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뒤늦게 도전한 공부의 리포트도 바쁘고, 아이들의 요청사항을 해결하기도 분주했죠. 방학 전 7월19~ 23일: 또래중재자 연수. 23일 연수 후 24일까지 부장 연수. 7월 26~30일 한문화 인성교육 연수. 그리고 8월 2~6일 백두산 연수. 시간이 부족한 것만 같았습니다. 누적된 피로를 풀기도 전에 화요일부터 출근 했습니다. 더 구체적인 자료 제작과 준비 마무리를 위해서였죠. 수요일엔 참가하는 가정에 준비상황을 하나하나 전달하고 보니 당직자의 염려에 시간이 7시인걸 알았죠. 집에서도 새벽 2시까지 워드 작업을 했습니다. 목요일 캠프 참가 선생님들과 협의를 갖는데 칼라 프린트가 속을 썩이더군요. 다시 챙겨 가지고 집으로 와서 12시 넘도록 준비하고 짐 싸고 ( 아! 빨리 자야하는데‥) 혹 빠트린 건 없는지 되 집어 보고 또 되 집어 보았습니다. 21 가족 중에는 돌발 상황으로 5 가족이 불참하게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어쩌겠습니까! 어떤 분들일까? 작년에 함께 한 몇 분은 친숙하기에 걱정되는 마음도 생기고, 무리라고 불안해하는 마음들을 다독이기에도 예민해 지더군요. 아니! 우린 잘 할 수 있어! 파이팅!!!!!!!! 우리 집 식구들은 과로한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 하느님! 저 잘하고 있죠? 전 하느님 빽을 믿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1시를 넘기면서 잠을 청했습니다.


출발(2004. 8.13. 금)

6시 경 일어났습니다. 마음이 조급해 져서 아침도 의무로 먹었지요.

식구들의 염려를 뒤로 차를 몰았습니다. 아직도 휴가의 잔영이 남은 서울은 평소보다 쉽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흠! 출발이 좋군!) - 작은 것에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픈 마음이죠. 교감 선생님의 웰빙 양갱이와 마스타드, 학부모회에서 준비해 주신 음료와 간식으로 예정보다 30분 늦은 출발을 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의 굳은 표정과 어떤 캠프일까 하는 막연함을 느끼면서 [홍반장] 의 활약 사를 보며 졸며 그렇게 희방사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한 달 전 교통사고로 아직 무릎이 굽혀지지 않는 현정모 가족과 심한 배탈로 참석 못할 뻔한 최문석 가족은 다시 차를 타고 숙소로 떠났습니다. 김태현 아버지는 무릎이 약하시다고 해서 차편으로 가시길 권했는데, 아들과 함께하리라는 비장한 각오에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선두와 후미를 정하고 희방 폭포와 희방사를 거쳐 오르는데 등산에 경험이 많으신 몇몇 아버지들의 도움으로 늦어지는 팀은 안전하게, 앞서는 팀은 서로를 격려하며 가파른 산길을 넘었습니다. 출발 때 제가 "단순한 산행이 아니라 부자간의 대화를 나누는 과정입니다" 했지요. 후미에 있든 제가 앞으로 나가면서 장운봉 선생님이 후미로 위치를 바꾸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상식을 총 동원하여 복식 호흡과 걸음의 리듬을 찾는 가운데 대부분의 가족들은 준비가 안 된 팀도 있고, 남한산성 정도의 산행으로 가볍게 생각하신 듯도 했습니다.

(양말 두 켤레 신고요, 새로 산 신발은 안 됩니다. 오이와 물은 각자 하나씩 준비하시고요, 모자 꼭 쓰세요) 신발이 잘 못되어 휴게소에서 새로 산 가족. 맨발에 발에 착 붙는다고 얇은 신을 세트로 신은 가족. 헐렁한 운동화에 너풀거리는 복장으로 시작부터 물을 찾는 아이. 500미터도 되기 전에 오이 꺼내 먹고 쉬는 선두. 초반부터 무릎 통증이 느껴지는 아버지. 모든 눈은 저를 보며 ' 이 무슨 극기 훈련이오! 무모한 것 아니오! 지금이라도 괘도 수정 하시지?'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렸습니다. " 계속 갑니다. 목표를 정한 다음 수정은 없습니다." 무슨 전투단 단장처럼 밀어 붙였습니다. 1.7킬로미터 정도의 연화 제 2봉. 표고에 따라 식물 분포가 다름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36명의 부실한 대원으로는 오르는 자체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생각했습니다. 2시 경에 선두 도착. 그곳에는 소백산 국립공원 북부 사업소에서 생태 학습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3/1 먼저 점심을 먹고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아이스크림처럼 동그란 천문대를 내려보며 '양지 꽃, 동자 꽃, 함박꽃나무 등 생태 보호와 야생화를 설명 듣는데 2진이 오르고 나머지 합류에 1시간 반이 소요 되었습니다. 생태교육은 일부로 마치고 비로봉을 향하여 산행을 강행했습니다. 아픔을 이끌고 오로지 아들과의 동행을 위해 오르신 아버지와 발목이 삐끗한 병준이는 사업소 지프차로 하산하고 넉넉한 소잔등 같은 능선으로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했습니다. 아들을 차로 보내고 걷는 병준이 아버지의 뒷모습에 '어이없음의 기운'을 느끼면서 제 마음도 무거웠습니다. 송 선생님은 체력이 아니라 오기로 걷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아버지는 근육이 뭉쳐서 힘들고, 앞 구릉이 다 인가 싶으면 비로봉은 저만큼 물러나'메롱'하는 것 같았습니다. 희방사 쪽의 절벽과 소나무들이 숨어 있지만 찾아볼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나무마다 명찰을 붙여 놓았지만 읽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햇빛은 투명했고 바람은 이미 가을 냄새를 짙게 풍겼지만 발부리만 보면서 옆이 없는 걸음뿐이었습니다. 마지막 주목 군락지 입구에서 다시 0.7킬로미터에 비로봉이 있었습니다. "다녀와야 합니다!" 몰아 세웠지만 얼굴들은 " 시간도 없는 데 여기서 보면 되었지 꼭 가야하는가?" 미간이 굳어지고 입이 다물어지고 있었지만 그냥 갔습니다. 해발 1439미터의 비로봉. 이정표만 우뚝 선 꼭대기. 발아래 엎디어 있는 계곡과 산사가 느껴지는 바람의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저만의 감상인 듯 했습니다. 어떤 분은 휴대전화로 "여기가 소백산 비로봉이야" "어떤 분은 사방으로 아들 사진 찍어주기에 바쁘고" 짱구 선생님 "여기까지 왔는데 비로봉 봐야지!" 했든 각오가 감격스럽기도 했습니다. 기면 사진을 찍고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 1학년은 이렇게 내려갈 거 뭐 하러 왔어요." 그 투덜거림에 "얘야! 우리에겐 과정이 주는 의미가 더 크단다" 속삭여 주었습니다. 초원의 계단을 지나고 오랜 세월에 뒤틀린 주목 군락도 지나고 1학년은 야영장 매점 안내판에 희망을 걸고 갈증과 피로를 끌고 하산 하였습니다. 2학년 친구가 코피가 계속 나오는 바람에 어두워지는 것과 더 심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산그늘처럼 짙어지는 데 그 아이 아버지는 선생님을 위로해 주시며 "집에서도 잘 나는 코피예요" 하시더군요. 중간에 샘물이 주는 신선함과 고마움. "물아! 이곳에 있어 주어서 고마워" 아이들 기대와는 달리 [매점 임시 휴업] 다행히 이제부터는 넓게 다듬어진 길이라 도망치는 해를 좇아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발에 물집이 잡혔다는 호소도, 발바닥에 불이 나는 것 같다는 투정도 못 들은 척 재촉하고 도 재촉하고. 길은 점점 어둠에 묻히고 해는 거의 고리를 말아 넣고 있었습니다. 몇몇 친구들과 끝말 이어가기, 노래 부르기 로 생각을 바꾸려는데 천동 2다리가 나오고 아 ! 드디어 공원 사업소. 이젠 500미터 정도면 숙소! 마지막 다리에 먼저 도착한 아버지들이 마중 오시더군요. 얼마나 반갑든지 - - -

우리는 장장 8시간의 산행과 14 킬로미터의 강행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은 순간에 뿌듯함과 잘했다는 안도감으로 웃을 수 있었습니다. 준비된 저녁 프로그램은 모두 다음 날로 넘기고 간단한 자기소개와 굳은 얼굴 풀기를 위해 얼굴 디스코와 웃음 단추를 해 보았지만 썰 ~ 렁했지요. "안-티 변선생" 모임이 결성되고 평상에서의 여름밤은 그렇게 대단한 일과를 마무리 져 주었습니다. 바람은 서늘하고 별

은 빛나며 평상에 주고받는 아버지들의 웃음과 귀여운(?) 불평불만이 행복한 잠을 청하게 했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보인의 부자(父子)유친! - 2일(2004. 8.14. 토)

5시부터 기상시간을 놓칠까 염려하고 뒤척였다.

정확하게 6시15분에 일어나 피로에 지친 송선생이 깰까 싶어 살그머니 나갔다.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혼자서 아침 체조를 하고 연단 5분을 하는데 영경이 아버님이 산책하고 오셨다.

7시 반쯤 모두를 깨웠다. 비틀거리는 녀석, 움추리며 흔들거리는 녀석, 아버지들은 눈치 보며 빠르게 정렬하는 데 아들들은 응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 있는 자세도 그렇고, 말도 따르지 않아서 답답하기도 했다.

단학에서 맛 본 조타와 기 운동으로 아침을 열고 8시 식사. 9시 30분부터 강당에서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크레파스도 쓰고 물감과 풍선 그리고 몇 가지 활동지로 오전을 마쳤다.

풍선 터뜨리기에 엄청난 배동산에 계속 실패. 아들이 "아빠!"하며 달려와 안기면서 터트린다. 예뻤다.

mbti 를 이용한 성격 이해하기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행계획 사례로 이해를 높인 것 같아서 좋았다.

나를 사랑하고, 타인과의 다름을 이해하기가 오전까지의 활동 목표였다.

시각장애 체험으로 건강한 아들을 감사하고, 건강하게 낳아주심을 감사하기였다.

오후엔 풀장이 시원치 않아서 문석이 아버님이 미리 봐둔 계곡으로 맨발 명상을 하며 나갔다.

물안경을 준비한 병준이(2)는 물 만난 고기처럼 활기차게 미끄러지고(전날 발목 삔 것 맞나?)

아버지 들은 웅덩이를 넓게 만들어 주느라 물속으로 물가로 분주하다.

돌탑 쌓기에 열중인 영경이의 수줍은 모습. 선호 아버지와 선호 그리고 교준, 병준(1), 선우, 동준이의 큰 규모의 쌍둥이 탑 쌓기. 경회와 문석, 태현이는 가냘프게 떨고 있고(평소 운동이 부족해 보인다),

병준(3), 원희, 영진, 원호는 선생님에게 아주 호전적으로 물싸움을 걸어 왔다.(짜식들! 내가 이겼다. 맞지?)

물안경을 빌려 주며 물속에서 노는 물고기를 구경 시켜주는 병준이(2) - ' 병준아! 나중에 우리 수영장 가자!'

첨벙거리는 나 자신이 옛날 우리 동네 웃보에서 놀든 시절로 빠져든다.

긴 둑에 맨 황소가 무서워 빙빙 돌며 걷든 길. 어머니의 이불보가 풀밭에 널려 눈부시든 빛. 어항에 된장 넣고 고기 잡아 솥단지 걸고 끓인 매운탕. 뱀장어가 무섭고, 구불거리는 뱀에 놀라 울든 막내 동생이 지금 45살이라니 - - - 세월은 소달구지처럼 느린 듯 했지만 혜성처럼 그렇게 지나 간 것 같았다.

입술이 파래진 아이들과 아버지, 선생님들의 족구 게임을 보러 갔다.

청년들이 신나하듯 응원과 담소가 족구장을 활기차게 해 준다. 웬지 분주한 문석이 아버지와 정모 아버지들의 눈치가 보여 숙소로 들어 왔다. 술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아버지들이 내 눈치를 보는 표정이 웃음이 났다.

그렇지만 허용할 수도 없고 저녁 프로그램을 강행했다.

(우리가 학생인가 10분 쉬고 또 하고, 세부 프로그램도 나누어주지 않고 일방적이잖아!, 아들과 대화할 시간을 주어야 대화를 하지, 이건 무슨 빡빡한 수업이야 교육이야! - 와글와글 시끌시끌, 투덜투덜 . 소리 없는 그러나 아주 시끄러운 항의가 천정을 메운다) - 그래도 계획대로 합니다!

생각을 바꾸되 긍정적으로 우리는 오-링과 손가락으로 사람 들어올리기를 했다. 조명을 끄고 낮은 음악으로 자기와의 싸움으로 지구 들기 연단 10분도 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안고 5분 있기도 했다.

9시 송어회가 그리운 아버지들은 얼마나 말 잘 듣는 범생이 든지.

두 분 아버지는 난생처음 보충교육을 받게 되었다.(제가 남으시라고 했거든요) - 그 표정은 순수의 시대로의 여행 같았다. 난 참 행복합니다! 그렇게 맑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으니까요!

'파리의 연인' 보고 싶은 데 밖의 활기에 평상으로 나갔다.

(아버지들끼리 모의하여 마지막 밤을 꾸며 놓으셨다. 대장의 갈등이 잠시 스친다)

가장 큰 안주는 안티-변 선생 같았다.

아들들은 노래방 기계와 사발 면, 과자와 음료로 신나 있고

아버지는 저렴하고 싱싱한 송어 회와 친숙해진 동료(?)애로 사업 이야기, 자식 이야기로 밤을 밝혔다.

순간 이 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 준 학생들의 어머니가 떠 오른 것은 왜일까?

고마운 마음도 있고, 결국 뒤풀이를 하고만 상황에 대해 내가 대표로 바가지를 긁어야 하는데 하는 미안함 같았다. ( 아이, 선생님! 집에서 시달리는 데 나와서까지 그러면 어쩝니까? - 애교 어린 투정에 나도 갈팡질팡!)

일기예보는 약속대로 비를 뿌리고 아버지 들은 방으로 옮기며 즐기는 가운데 축구 걱정을 하며 잠을 청했다.

작년에 왔던 친구들이 밝아지고 적극적인 표현을 하는 변화가 많은 보람을 안긴다.

병준이 이름이 1,2,3 학년에 모두 있다.

오늘 오전에 태중이 가족은 처음부터 계획된 일 때문에 어머니가 모시러 왔다. 특히 산행할 때 태중이 아버지의 도움이 컸었기에 고마움과 아쉬움이 컸다.


- 하느님의 보살핌에 오늘도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


부자(父子)유친!- 2일(2004. 8.15. 일)

오늘 아침 역시 영경이 아버지 혼자 나와 계셨습니다.

7시 30분을 지나 방방이 두드리고 깨우는 극성에 비틀거리는 [신해철의 째즈 카페] 이었습니다.

아이들 캠프라면 간밤에 불꽃놀이와 촛불기도가 수순이겠지만, 부자 캠프는 좀 달랐습니다.

어느 분인가 '오늘이 광복절이네!'

순간 경건한 마음이 바람소릴 내더군요.

숙소는 다른 팀들은 거의 퇴소, 우리 식구들만의 조용한 아침 식사 후 오전 프로그램을 했습니다.

아버지를 아들이 안아주는 시간과 나무와의 대화. 아버지가 아들 발 씻어주기를 통하여

마음으로의 대화!

눈빛으로의 대화!

마주 잡은 손의 체온으로의 대화를 갖는 시간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몇몇 부자 사이에는 일체감을 갖기 위한 기도가 느껴져서 숙연해 지기까지 했습니다.

아들의 가슴에 안긴 소감에서는 따뜻함, 편안함, 사랑 받는 느낌과 환희의 빛까지 감도는 나눔은

이곳이 아닌 곳에서도 항상 함께하길 기도 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내 식구만이 아니고 함께하는 더불어 사는 것을 위하여 의자 만들기 통해 일체감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점심 후 윤회의 악수를 통해 2박 3일의 각자의 느낌을 승화 시켜

함께한 소중한 시간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말없이 굳은 악수와 작은 가슴이 팔딱이는 우리 보인의 아들들!

이 시간을 통해 부쩍 큰 모습이 예쁘고,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찾아 열심히 하리라는 기대가,

믿음이 진하게 풍겼습니다.

햇볕은 따갑고 코고는 아버지 소리에 정체도 지루하지 않은 귀가 길이 되었습니다.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우리 보인 가족의 버스는 격전지에서 금의환향하는 듯한 뿌듯함이 있었습니다.

내년엔 올해 미숙했든 점을 보완하여 사랑이 철철 넘치고, 새롭게 펼친 세상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리라

또 다른 다짐을 해 보았습니다.

함께 하고 싶었는데 함께하지 못한 다른 보인 가족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조용한 운동장에서 헤어짐을 아쉬워 보고 또 보고 흔드는 손사위에 따뜻한 웃음이 퍼지는 것! 다 보셨죠!

동참 해 주시고, 지지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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